티스토리 뷰
고려 왕릉은 불교와 풍수지리, 그리고 왕실 권위의 상징이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과 예술의 복합 결정체입니다. 왕릉의 구조와 조성 원칙, 예술적 가치, 역사적 의미를 통해서 고려 왕실 문화와 장례관의 정수를 살펴봅니다.
고려 왕릉의 입지와 조성 원칙
고려 왕릉은 주로 개경(현 개성)과 그 주변, 강화도 등지에 주로 분포하며, 풍수지리설과 불교적 비보설에 따라서 산과 물이 어우러진 명당을 신중하게 선정해 조성되었습니다. 왕릉의 터는 대개 산지의 경사를 따라서 3~4단의 계단식으로 구성되었으며, 산줄기가 좌우로 감싸고 그 사이에는 천이 흐르는 지형이 많았습니다. 계단식 구조는 산지의 훼손을 최소화하면서도 능의 위엄을 더욱 높이는 고려인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왕릉의 위치 선정에는 길지(吉地)를 택하는 원칙이 적용되었고, 이는 왕실의 권위와 국가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였습니다. 강화도에 위치한 왕릉들은 몽골 침 입기 수도가 강화도로 옮겨진 이후 역사적 배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왕릉의 구조와 예술적 특징
고려 왕릉의 능역은 보통 3~4단의 계단식으로 조성되어서, 가장 위에는 석실과 봉분이 놓이고, 그 주위에는 병풍석(호석)을 두르고 돌짐승과 석인상, 석수, 망주석, 장명등 등 다양한 석조물들이 배치됩니다. 봉분의 높이는 3~5m, 지름은 6~9m 정도였으며, 하부에는 신라 왕릉에서 계승된 면석과 십이지신상의 호석이 둘러져 있습니다. 정자각, 혼유석, 장명등 등 제례요 건축물과 석물도 갖추어져 있어서 왕릉의 권위와 격식을 특히 강조합니다. 내부 석실은 상자모양의 돌방무덤으로, 벽면에는 사신도, 십이지신도, 천문도 등 내세의 평안을 기원하는 벽화가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묻힌 현정릉은 쌍봉 형식과 벽화, 정교한 석물 등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아서 한반도 최고의 왕릉으로 평가받고도 있습니다.
왕릉의 장례 절차
고려 왕릉의 장례 절차는 중국 한·위나라의 제도를 참고하면서도 고려만의 매우 독특한 방식을 발전시켰습니다. 장례는 대개 16~26일, 후기에는 19일에서 3개월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도감이 전체 절차를 총괄했습니다. 왕릉의 위치 선정과 조성에는 풍수지리와 불교적 요소가 다수 결합되었고, 봉분과 석실, 석물 등은 왕실의 권위와 내세 신앙을 상징합니다. 왕릉의 참배와 제례는 국왕의 정통성을 확인하면서 선조의 유지를 계승하는 중요한 의례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려 말에는 전란과 폐위 등으로 일부 왕릉의 위치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으나, 공민왕릉에서 완성된 능제는 조선 왕릉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결론
고려 왕릉은 예술, 권위, 풍수지리가 조화롭게 이룬 독특한 문화유산입니다. 계단식 구조, 정교한 석물과 벽화, 풍수에 입각한 입지 선정 등은 고려 왕실의 가지고 있는 이상과 내세관, 국가 정통성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 왕릉으로 계승되었습니다.